경북 3.1운동 중심지 포항…100년 간 잊혔던 '역사 회복' 시급

경북 3.1운동 중심지 포항…100년 간 잊혔던 '역사 회복' 시급

포항지역 '경북 3.1 운동' 시작점이었지만 그동안 관심과 지원 '전무'

포항지역 3.1운동 발상지인 포항교회(현 포항소망교회) 건물 전경(사진=포항소망교회 홈페이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경북지역 만세운동의 시작점이자 구심점이었던 포항과 지역 기독교계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지난 100년 간 잊혀졌던 포항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찾는 일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북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현재의 포항 중앙파출소 인근인 옛 여천장터에서 처음 시작됐다. 영남권 최초의 3.1 운동인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 만세운동 이후 사흘 만이다.

당시 경북에는 경주와 상주, 안동, 영천 등 포항보다 도시 규모가 훨씬 큰 도시가 여럿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일이다.

여천장터 만세운동 이후 포항은 경북지역 3.1 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3월 12일에는 영흥학교, 22일에는 청하장터, 27일 송라 대전리 두곡숲, 4월 1일과 2일에는 연인을 비롯해 기계·죽장·신광·청하·송라·흥해 등 포항시의 전신인 영일군 전역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당시 포항에서만 9차례의 3.1운동이 일어나 연인원 2900명이 참여해 40명이 숨지고 38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20명이 검거됐다.

당시 일제의 임시호구조사 결과 영일군 포항면 인구가 6천588명이고 이 중 25% 가량이 일본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항지역 3.1운동의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수치다.

포항에서 3.1운동의 열기가 높았던 이유는 여럿 있지만 가장 큰 동력은 기독교계의 헌신과 희생이 꼽힌다.

기독교계가 중심이 됐던 대구 서문시장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포항교회(현 포항제일교회) 최경성(당시 36) 장로와 송문수(당시 37) 장로가 포항으로 피신한 뒤 지역 교인과 포항교회가 설립한 영흥학교 교사들에게 3.1운동을 알리고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후 송문수 장로와 영흥학교 이기춘 교사 등 지역 기독교인들은 잇따라 체포돼 고문을 받은 뒤 옥살이를 하거나, 만주 등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간직한 채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결국 해방을 맞았다.

이처럼 포항지역 기독교계는 경북 3.1운동의 시초이자 도화선이었지만 '포항지역 3.1운동'은 지난 100년간 사실상 잊혔었다.

지자체는 물론, 지역 향토사학자들마저 별다른 관심을 쏟지 못하면서 포항에는 3.1운동 기념탑도 없고, 포항지역 3.1운동 발상지인 포항교회 건물(현 포항소망교회)에도 만세운동과 관련한 글귀 하나 찾을 수 없는 상태다.

이상준 향토사학자는 "포항은 경북 3·1운동의 발상지이지만 지난 100년 간 이를 제대로 연구하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포항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희생, 그리고 기념사업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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